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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몽 이야기

앞일을 미리 비춰 준다고 여겨지는 신비로운 꿈.

예지몽은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넌지시 보여 준다고 전해지는, 가장 궁금증을 자아내는 꿈입니다. 묘하게 마음에 남는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예지몽 이야기 52편
여기 실린 꿈 이야기와 해몽 풀이는 재미와 위안을 위한 오락 콘텐츠입니다. 실제 길흉화복을 예언하거나 보장하지 않으며, 중요한 결정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내려 주세요.

예지몽 이야기 1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낯선 도시의 버스 정거장에 홀로 서 있었다. 간판의 글씨는 읽을 수 없는 낯선 문자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자리가 오래전부터 익숙했던 것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벤치 밑을 무심코 들여다보니,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려 까맣게 잊고 있던 물건이 먼지 하나 없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집어 드는 순간, 잊고 지낸 그 시절의 온기와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와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런데 그것을 손에 꼭 쥔 바로 그 순간, 이 장면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머지않아 실제로 벌어질 일이라는 예감이 선명하게 스쳤다. 멀리서 도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렸고, 나는 이 물건을 되찾을 날이 정말 가까워졌음을 직감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잠에서 깼다.

예지몽 이야기 2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낯선 골목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의 모든 것이 지나칠 만큼 또렷하게 보였다. 벽에 걸린 간판의 색 바랜 글씨, 이층 창문에 드리운 하늘색 커튼, 담벼락을 타고 오른 담쟁이의 잎맥 하나하나까지 선명했다. 발밑의 갈라진 보도블록과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빵 굽는 냄새마저 생생했다. 나는 걸음을 옮기며 확신했다. 언젠가 이 길을 실제로 걷게 될 것이라고, 그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골목 끝의 붉은 우체통 앞에 섰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조용한 예감이 차올랐다. 꿈에서 깬 뒤에도 그 풍경은 지도처럼 마음에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예지몽 이야기 3

고요한 방 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천천히 수화기를 들었다. 낯익은 듯 낯선 목소리가 아직 나에게 오지 않은 소식 하나를 담담하게 전했다. 서두르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그 말투가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상대는 할 말을 마치자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신호음이 방 안에 낮게 울려 퍼졌다. 잠에서 깬 뒤에도 그 목소리와 문장이 귓가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도, 나는 이미 그 소식을 들어 버린 사람처럼 하루 종일 마음을 졸였다. 머지않아 정말로 전화가 올 것만 같았다.

예지몽 이야기 4

오래도록 소식이 끊겼던 친구가 꿈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나를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얼굴빛이 밝았고, 걸음걸이에도 여유가 묻어났다. 친구는 내 손을 따뜻하게 잡으며 잘 지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는 오래된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웃었고, 헤어질 때 친구는 곧 다시 보자며 손을 흔들었다. 잠에서 깬 뒤에도 그 온기가 손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며칠 안에 정말로 연락이 올 것 같은 예감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그리움과 설렘이 뒤섞인 채, 나는 친구의 이름이 화면에 뜨는 순간을 조용히 기다렸다.

예지몽 이야기 5

벽에 걸린 달력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한 날짜 위로 붉은 색연필이 저절로 움직이며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했다. 누가 손을 댄 것도 아닌데 선은 또렷하고 진하게 그어졌고, 다 그려지자 그 날짜만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나는 그날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쁜 예감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까닭 모르게 설렜다. 손끝으로 그 붉은 동그라미를 가만히 만져 보자 종이에서 따뜻한 기운이 전해졌다. 잠에서 깬 뒤 나는 실제 달력을 펼쳐 그 날짜를 찾아보았고, 그날이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예지몽 이야기 6

바람 한 점 없는 호수는 거울처럼 잔잔했고, 나는 물가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수면을 들여다보았다. 거기 비친 얼굴은 분명 나였지만, 지금보다 조금 나이가 든 모습이었다. 눈가에는 옅은 주름이 잡혀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표정이 참 편안해 보였다. 오래 애쓴 끝에 겨우 도착한 사람처럼,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물을 살며시 건드렸고, 파문이 번지며 그 얼굴이 잠시 흔들렸다가 다시 또렷해졌다. 앞으로의 날들이 나쁘지 않겠구나, 하고 나는 조용히 믿게 되었다. 깨어난 뒤에도 그 편안한 표정이 오래 마음에 남아, 이제 곧 그런 얼굴로 살아갈 날이 올 것만 같았다.

예지몽 이야기 7

누군가 내 앞에 조용히 다가와 손을 펼치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손바닥을 내밀자, 그가 그 위에 작고 오래된 열쇠 하나를 살며시 올려놓았다. 놋빛으로 반들거리는 열쇠는 손안에서 서늘하면서도 묵직했다. 어떤 문을 여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그저 '때가 되면 알게 된다'고만 말하고 잔잔히 웃었다.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믿음직스러워서, 열쇠를 꼭 쥐었다가 조심스레 주머니 깊숙이 넣어 두었다. 아직 어떤 자물쇠가 나를 기다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그 열쇠가 딱 맞아 돌아가는 순간이 반드시 오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깨어난 뒤에도 손바닥에는 그 서늘한 감촉이 오래 남아 있었다.

예지몽 이야기 8

따뜻한 햇살이 마당에 가득한 오후였다. 저만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작은 아이가 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뛰어왔다. 아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모!' 하고 부르며 내 다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는 얼떨결에 그 작은 등을 감싸 안았는데, 품에 안긴 아이의 온기가 놀랍도록 진짜 같았다. 아직 세상에 오지 않은 인연을 미리 만난 것만 같았다. 아이의 머리카락에서는 햇볕 냄새가 났고, 나를 올려다보는 눈망울이 어찌나 맑던지 가슴이 뭉클했다. 깨어난 뒤에도 그 온기가 팔 안에 고스란히 남아, 언젠가 이 아이가 정말로 내게 달려오는 날이 오리라는 예감에 마음이 오래도록 따뜻했다.

예지몽 이야기 9

책상 위에 낯선 편지 한 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하얀 봉투는 손때 하나 없이 깨끗했는데, 발신인을 적는 자리만 이상하게 텅 비어 있었다. 누가 보낸 걸까, 나는 봉투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며 한참을 망설였다. 종이 안에서 무언가 나를 부르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마침내 손끝으로 봉투 끝을 살며시 뜯기 시작한 순간, 하필 그때 잠에서 깨고 말았다. 손안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편지에 무슨 말이 적혀 있었을지가 도무지 잊히지 않았다. 나는 그날 종일 방 안을 서성이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그 소식이 머잖아 정말로 내게 닿을 것만 같은 예감에 마음을 놓지 못했다.

예지몽 이야기 10

고요한 새벽, 방 안은 푸르스름한 어스름으로 가득했다. 문득 창밖에서 가벼운 날갯짓 소리가 들려 눈을 돌리니, 티 없이 흰 새 한 마리가 유리창 앞에 사뿐히 내려앉아 있었다. 새는 부리로 유리를 톡, 톡 두드렸다. 서두르는 기색 없이, 마치 나를 조용히 부르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홀린 듯 다가가 유리 너머로 그 눈을 마주 보았다. 까맣고 맑은 눈 속에는 무언가 좋은 소식을 물어다 주려는 듯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 새는 한참 나를 바라보다 다시 하얀 날개를 펼쳐 어스름 속으로 사라졌다. 깨어난 뒤에도 그 눈빛이 오래 기억에 남아, 곧 반가운 무언가가 내게 날아들 것만 같았다.

예지몽 이야기 11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사무실이었다. 낯선 얼굴들이 책상마다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오래 알아 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걸고 함께 웃었다. 나 역시 어색함 없이 그 사이에 섞여, 서류를 넘기고 이야기를 나누며 일하고 있었다. 창으로 드는 오후의 빛과 은은한 커피 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마저 이상하리만큼 익숙했다. 분명 아직 겪지 않은 자리인데도, 이미 몇 년을 이곳에서 지낸 사람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나는 문득 이 풍경이 곧 다가올 나의 어느 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난 뒤에도 그 편안한 온기가 남아, 머지않아 이런 자리에 앉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예지몽 이야기 12

낯선 거리를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한 사람이 다가왔다. 스치듯 지나가려던 그가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곧 다시 만나요' 하고 정답게 인사를 건넸다. 누구인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오랜 사이 같은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잔잔히 웃으며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뒤늦게 돌아보았을 때 그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말이 그저 스치는 인사가 아니라 정말 조만간 이루어질 약속처럼 느껴졌다. 깨어난 뒤에도 그 얼굴을 떠올리며, 머잖아 어딘가에서 그를 마주칠 것만 같은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예지몽 이야기 13

잔잔한 바다는 아침 햇살을 받아 잘게 반짝였다. 나는 항구의 방파제 끝에 서서, 저 멀리 수평선에서 배 한 척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배는 서두르는 법 없이, 물결을 부드럽게 가르며 조금씩 항구로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배가 낯설지 않았다. 갑판 위 무언가가 오래도록 내가 기다려 온 것이라는 확신이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올랐다. 뱃머리가 부두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두근거렸다. 짠 바닷바람과 밧줄 냄새, 갈매기 우는 소리마저 그 순간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깨어난 뒤에도 그 배가 잊히지 않아, 내가 기다리던 무언가가 정말 머지않아 내게 닿으리라는 예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예지몽 이야기 14

벽에 걸린 오래된 시계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그 시계는 바늘이 멈춰 선 채, 시간을 잃어버린 듯 조용히 걸려 있었다. 나는 무심코 그 앞에 서서 멈춘 바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도 시계가 톡, 하고 다시 똑딱이기 시작했다. 초침이 한 칸, 또 한 칸 움직이며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 규칙적인 소리가 방 안을 조용히 채우자, 오래 막혀 있던 무언가가 마침내 풀리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깨어난 뒤에도 그 똑딱임이 귓가에 남아, 그동안 멈춰 있던 일들이 곧 다시 제 길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예지몽 이야기 15

낯선 골목 끝, 처음 보는 집 대문 앞에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오래된 나무 대문 위에는 작은 문패가 하나 걸려 있었는데, 거기 새겨진 이름이 안개 낀 듯 흐릿하게 지워져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글자를 읽어 보려 애썼지만, 획들은 좀처럼 또렷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빈 문패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언젠가 저 자리에 다름 아닌 내 이름이 또박또박 새겨질 것 같은 기분이 스며들었다. 대문 너머로는 조용한 마당과 따뜻한 불빛이 어른거렸다. 깨어난 뒤에도 그 문패의 흐릿한 자리가 눈에 선해, 머지않아 내가 저 집의 주인이 되는 날이 오리라는 예감이 마음에 남았다.

예지몽 이야기 16

꿈속 어딘가에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처음 듣는 곡인데도 선율은 놀랍도록 또렷했고, 마디마디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곡을 따라 흥얼거리고 있었다. 음 하나하나가 가슴을 잔잔히 두드렸고, 어느새 온몸이 그 리듬에 젖어 들었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노래는 나를 위해 준비된 것만 같았다. 그러다 문득 잠에서 깼는데, 놀랍게도 선율이 여전히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멜로디를 잊지 않으려 낮게 흥얼거렸다. 언젠가 어느 거리에서, 혹은 라디오에서 이 곡을 다시 듣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예지몽 이야기 17

물이 맑게 고인 논 앞에 나는 서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수면 위로 하늘과 흰 구름이 그대로 비쳐, 마치 위아래로 두 개의 하늘이 펼쳐진 듯했다. 어디가 진짜 하늘이고 어디가 물에 비친 하늘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고요하고 투명했다. 나는 논둑을 따라 그 두 하늘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발밑에서는 물빛 하늘이 흔들리고, 머리 위에서는 진짜 구름이 유유히 흘러갔다. 그 사이를 걷다 보니 마음속 안개가 걷히듯, 앞으로 걸어갈 길이 또렷하게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가 선명해졌다. 깨어난 뒤에도 그 두 겹 하늘의 맑음이 남아, 앞날이 밝게 트일 것만 같은 예감이 마음에 고였다.

예지몽 이야기 18

누군가 내게 조용히 다가와 손을 내밀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손바닥을 펴자, 그가 잘 여문 씨앗 한 줌을 그 위에 소복이 올려놓았다. 씨앗들은 저마다 단단하고 매끈했으며, 손안에서 놀랄 만큼 묵직하게 느껴졌다. 어디에 심어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그저 '심을 때가 곧 온다'고만 말하며 잔잔히 웃었다. 나는 그 말의 무게를 가늠하며 씨앗을 조심스레 손에 쥐었다. 아직 어느 밭에 뿌려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손바닥에 전해지는 그 든든한 무게가 이상하게 마음을 설레게 했다. 언젠가 이 씨앗을 흙에 묻고 싹이 돋는 날이 오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깨어난 뒤에도 손안에는 그 묵직한 감촉이 오래 남아 있었다.

예지몽 이야기 19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있었다. 손잡이에는 먼지가 앉아 있었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오래도록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무도 밀지 않았는데 문이 스르르 저 혼자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으로 따뜻한 빛이 한 줄기 새어 나오더니, 점점 넓게 번지며 어두운 복도를 부드럽게 물들였다. 그 빛은 눈부시지 않고 포근해서,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다가서게 만들었다. 방 안에서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문지방 앞에 서서 그 온기를 가만히 느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곧 알게 될 것만 같은 예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깨어난 뒤에도 그 따뜻한 빛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예지몽 이야기 20

낯선 역의 승강장에서 나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딘가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무심코 머리 위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거기 떠오른 행선지가 어디에도 들어 본 적 없는 지명이었다. 지도에도 없을 법한 그 이름을 나는 입속으로 가만히 되뇌어 보았다. 이상하게도 그 낯선 글자들이 두렵기보다 설레게 다가왔다. 언젠가 정말로 그곳으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는 날이 올 것만 같았다. 저 멀리서 기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고, 나는 가방을 고쳐 쥐며 그 순간을 기다렸다. 깨어난 뒤에도 그 낯선 지명이 또렷이 떠올라, 머잖아 그곳으로 떠날 날이 오리라는 예감에 마음이 부풀었다.

예지몽 이야기 21

잔잔한 밤이었다. 잠든 마을 위로 수많은 별이 흩뿌려져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유난히 크고 밝게 빛나며 나를 따라 움직였다. 내가 걸음을 멈추면 별도 멈추었고, 다시 걸으면 별도 나란히 흘렀다. 마치 어두운 길 위에 조심스레 등불을 놓아 주는 것 같았다. 그 빛이 어떤 길을 안내하려는 듯해서 발걸음이 한없이 가벼워졌고, 두렵던 앞날이 문득 환하게 느껴졌다. 별은 언덕 너머로 나를 이끌었고, 나는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곧 알게 될 것만 같았다. 잠에서 깬 뒤에도 그 온기가 가슴에 남아, 좋은 일이 정말 가까이 와 있음을 나는 조용히 믿게 되었다.

예지몽 이야기 22

낯선 부엌이었다. 창밖으로는 노을이 번지고, 나는 누군가와 나란히 서서 저녁을 짓고 있었다. 도마 위에서 칼질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고, 냄비에서는 구수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곁에 선 사람의 얼굴은 이상하게 흐릿했지만, 그 다정한 옆모습과 부드러운 어깨선만은 또렷했다. 그가 무심코 내 앞에 접시를 놓아 주었고, 나는 그 손길이 오래 함께해 온 사이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 따뜻한 저녁이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날들의 첫 장면 같아서, 나는 국자를 든 채 가만히 미소 지었다. 잠에서 깬 뒤에도 그 부엌의 온기가 손끝에 오래 남아 있었다.

예지몽 이야기 23

오래된 책장 사이를 뒤적이다가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이상하게도 그것은 아직 찍지 않은 장면이었다. 어느 환한 마당에서 사람들이 어깨를 맞대고 활짝 웃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도 하나같이 정겨웠고, 옷차림도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이 든 모습이었다. 사진 속 나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미리 엿본 듯해서 마음이 뭉클해졌고, 나는 그 사진을 가슴에 꼭 안았다. 이 장면이 언젠가 반드시 현실이 될 것만 같아서, 잠에서 깬 뒤에도 그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예지몽 이야기 24

고요한 강가에 안개가 옅게 깔려 있었다. 물빛은 은은히 반짝였고, 누군가 나룻배를 조용히 대며 '건널 준비가 됐냐'고 나직이 물었다. 사공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에는 이상한 다정함이 배어 있었다. 배가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가슴이 설레며 콩닥거렸다. 강 건너편에서 희미한 불빛 하나가 나를 향해 손짓하는 듯했다. 나는 천천히 배에 올랐고, 물살이 부드럽게 배를 밀어냈다. 새로운 무언가가 저 강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노 젓는 소리가 잠결에도 오래도록 이어졌다.

예지몽 이야기 25

펼친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작은 새싹이 돋아났다. 여린 초록빛 잎이 손금을 따라 파릇하게 몸을 펴는 것을, 나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새싹은 마치 내 온기를 먹고 자라는 것처럼 조금씩 키를 키웠고, 이내 작은 잎사귀를 두 갈래로 벌렸다. 손바닥이 따뜻해지며 심장 박동에 맞춰 잎이 살짝살짝 흔들렸다. 무언가 새로 시작될 거라는 분명한 신호 같아서, 나는 그것을 다치지 않게 두 손으로 조심스레 감싸 쥐었다. 이 여린 생명이 훗날 크게 자라날 것을 예감하며, 나는 잠에서 깬 뒤에도 한참 동안 손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예지몽 이야기 26

낯선 골목을 천천히 걷다가 그 끝에 다다랐다. 작은 가게 하나가 있었고, 유리문에는 '오픈 준비 중'이라는 팻말이 단정하게 걸려 있었다. 안쪽에는 새 물건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고, 아직 불은 켜지지 않았지만 어딘가 나를 기다리는 듯한 온기가 배어 있었다. 나는 유리에 손을 대고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상하게도 그 공간이 낯설지 않았고, 언젠가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익숙하게 자리 잡을 날이 올 것 같은 예감이 스쳤다. 골목을 돌아 나오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고, 그 팻말의 글씨가 잠에서 깬 뒤에도 눈앞에 선명히 떠올랐다.

예지몽 이야기 27

넓은 광장 저편에서 누군가 나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처음에는 실루엣뿐이었는데, 걸음이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서서히 또렷해졌다. 밝은 눈매와 환한 웃음이 마치 오래 알아 온 사이처럼 정다웠다. 그런데 아무리 떠올려 봐도 나는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아직 내 삶에 오지 않은 사람 같았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내밀었고, 나도 모르게 마주 웃으며 손을 잡았다. 그 온기와 인사가 이상하게 오래 남아서, 나는 잠에서 깬 뒤에도 그 얼굴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곧 어디선가 그 사람을 정말로 마주치게 될 것만 같았다.

예지몽 이야기 28

잔잔한 눈이 소리 없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나무도 지붕도 길도 모두 눈 속에 잠겨 고요했고, 오직 내 숨소리만이 하얀 공기 속에 번졌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눈밭에 찍힌 발자국은 나 하나뿐이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길을 내가 처음으로 열고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맑게 울렸고, 그 소리가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처럼 들렸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이 하얀 세상에서 첫 길을 내는 사람이 나라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벅차올랐다. 눈송이가 뺨에 내려앉는 감촉이 잠에서 깬 뒤에도 서늘하게 남아 있었다.

예지몽 이야기 29

이끼 낀 오래된 우물 앞에 섰다. 나는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어두운 물속으로 던졌다. 퐁,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물결이 동그랗게 번져 나갔고, 그 흔들리는 수면 위로 낯선 얼굴이 잠깐 떠올랐다. 부드러운 눈빛의 그 얼굴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결이 잦아들자 이내 사라졌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곧 내 삶에 인연이 닿을 사람인 것만 같아서, 나는 그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애써 기억하려 애썼다. 우물 속에서 다시 얼굴이 떠오르길 기다리며 한참을 서 있었고, 잠에서 깬 뒤에도 그 눈빛이 또렷이 남아 있었다.

예지몽 이야기 30

낯선 도시의 야경이 발아래 아득하게 펼쳐졌다. 수많은 불빛이 별처럼 반짝였고, 밤바람에 도시의 소음이 아스라이 실려 왔다. 그 광활한 불빛의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문득 어느 높은 건물 한 창에 따뜻한 불이 톡 켜졌다. 그 노란 불빛이 마치 나를 부르는 신호처럼 은은하게 흔들렸다. 나는 저 수많은 창들 가운데 바로 저기, 저 창 안 어딘가에 내 자리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언젠가 저 도시의 한 부분이 되어 살아갈 나를 상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불빛을 오래 바라보다 잠에서 깼는데, 눈앞에 아직 그 도시가 어른거렸다.

예지몽 이야기 31

누군가 내게 두툼한 서류 봉투를 두 손으로 정중하게 건넸다. 봉투는 묵직했고 반듯하게 봉인되어 있었다. 그는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축하한다'고 나직이, 그러나 힘주어 말했다. 무슨 일로 축하를 받는지 나는 알지 못했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진심 어린 온기만은 또렷이 느껴졌다. 봉투를 받아 든 손이 살짝 떨렸고, 가슴 한편이 두근두근 벅차올랐다. 오래 기다려 온 좋은 소식이 마침내 내게로 오고 있음을 나는 직감했다. 봉투를 열어 보려는 순간 잠에서 깼지만, 그 '축하한다'는 말과 손에 남은 종이의 감촉이 하루 종일 나를 설레게 했다.

예지몽 이야기 32

고요한 절 마당에 저물녘 빛이 부드럽게 내려앉아 있었다. 오래된 기와지붕 끝에 매달린 풍경이 이따금 바람에 흔들렸는데, 그날따라 그 소리가 유난히 맑고 깊게 울렸다. 댕그랑, 하는 여운이 마당 가득 퍼지는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그 맑은 울림이 오랫동안 가슴에 얽혀 있던 무언가를 살며시 건드리는 것 같았다. 얽히고설켜 좀처럼 풀리지 않던 마음속 오래된 매듭이, 이제 곧 스르르 풀릴 거라는 예감이 잔잔하게 밀려왔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잠에서 깬 뒤에도 그 풍경 소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은은히 울렸다.

예지몽 이야기 33

낯선 병실의 창가에 아침 햇살이 맑게 스며들고 있었다. 흰 커튼이 부드럽게 부풀던 그때, 어디선가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작지만 힘찬 그 소리는 온 복도를 가득 채웠고, 듣는 것만으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그 울음이 어느 방에서 들려오는지 두리번거리며 창가로 다가섰다. 창밖으로는 새들이 지저귀고 나뭇잎이 반짝였다. 새 생명이 세상에 첫 인사를 건네는 그 소리가 마치 내게 오는 기쁜 소식처럼 느껴졌다. 잠에서 깬 뒤에도 그 울음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남아,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저절로 미소를 지었다.

예지몽 이야기 34

손에 든 낡은 지도를 펼쳐 들여다보는데, 지도가 저절로 스르르 접히기 시작했다. 여러 갈래의 길과 지명이 하나둘 접혀 사라지더니, 마침내 단 한 지점만이 또렷하게 남았다. 그 자리에는 작은 붉은 표식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그곳이 어느 도시인지, 얼마나 먼 곳인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고, 언젠가 반드시 그 한 점을 찾아 길을 떠나게 될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 표식을 손끝으로 가만히 짚어 보았고, 종이의 결이 손끝에 느껴졌다. 잠에서 깬 뒤에도 그 붉은 점의 위치가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예지몽 이야기 35

잔잔한 바람이 불어오던 오후였다. 어디선가 하얀 편지 한 장이 바람에 실려 나풀나풀 날아오더니, 내 발밑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나는 몸을 굽혀 그것을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봉투에는 아직 아무 글씨도 적혀 있지 않았고, 종이에서는 은은한 풀 내음이 났다. 아직 쓰이지 않은 편지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 이미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곧 어디선가 누군가가 내게 오래 품어 온 진심을 전해 올 듯한 예감이 스쳤다. 나는 그 빈 편지를 가슴에 품고 바람이 불어온 쪽을 바라보았고, 잠에서 깬 뒤에도 그 종이의 감촉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예지몽 이야기 36

오래 비어 있던 옆집 창에 노란 불이 들어왔다. 오랫동안 커튼 없이 어둡기만 하던 유리 너머로, 처음 보는 온기가 스며 나왔다. 나는 담벼락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냄비 뚜껑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아이가 까르르 웃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 나직이 흥얼거리는 콧노래가 밤공기를 타고 정겹게 새어 나왔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소리가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곧 저 집에 좋은 이웃이 이사 올 거라는, 따뜻하고 분명한 예감이 가슴을 스쳤다. 나는 괜히 마당의 화분을 한 번 매만지고, 내일 아침 저 문 앞에 인사를 건네는 나를 벌써 그려 보았다. 그 예감은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오래 남았다.

예지몽 이야기 37

낯선 무대 위에 서자 눈이 부실 만큼 환한 조명이 나를 감쌌다. 발밑의 마룻바닥은 서늘하고 매끈했고, 어둠에 잠긴 객석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었다. 심장이 목까지 차오르는데, 그 순간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터졌다. 처음엔 한둘, 이내 파도처럼 밀려와 온몸을 우렁차게 울렸다. 나는 아직 이런 순간을 겪은 적이 없었다. 분명 오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손끝의 떨림과 벅차오르는 숨결이 너무나 생생해, 마치 곧 다가올 어느 날을 미리 만져 본 듯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그 벅참은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가슴 한복판에 또렷이 남아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예지몽 이야기 38

고요한 새벽 강가에 서 있었다. 물 위로 뽀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건너편이라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축축하고 서늘한 공기가 뺨을 스쳤고, 발밑에선 잔물결이 조용히 찰박였다. 이윽고 동쪽에서 옅은 빛이 번지자 안개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건너편 마을이 지붕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낮은 담장과 골목, 이제 막 연기가 오르는 집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 보는 풍경인데도, 나는 그곳이 앞으로 내가 살아갈 곳처럼 이상하리만치 낯익게 느껴졌다. 언젠가 저 강을 건너 저 마을로 들어서게 되리라는 조용한 확신이, 안개가 걷히듯 마음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예지몽 이야기 39

누군가 내 손목을 가만히 붙잡더니 색색의 실을 엮은 팔찌를 매어 주었다. 얼굴은 흐릿했지만 손길은 따뜻하고 정성스러웠다. 그이는 매듭을 몇 번이고 단단히 조이며 '인연이 이어질 거야'라고 나직이 말했다. 실이 손목을 감싸는 감촉이 서늘하면서도 포근했다. 나는 그 매듭을 손끝으로 몇 번이나 만져 보았는데, 아무리 당겨도 풀리지 않을 만큼 야무졌다. 그 단단함이 마치 그 말의 무게 같았다. 끊어지지 않을 인연, 아직 만나지 못한 누군가와의 약속.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그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나는 종종 손목을 내려다보며 언젠가 이어질 그 인연을 조용히 기다리게 되었다.

예지몽 이야기 40

낯선 정원에 발을 들였다. 봄기운이 채 무르익지 않은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은 화단마다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들이 촘촘히 맺혀 있었다. 초록빛 껍질에 싸인 봉오리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인 채 잠들어 있는 듯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서자, 마치 인사라도 하듯 그것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팽팽하게 부푼 꽃봉오리 안에서 색이 비쳐 나오는 것도 같았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곧, 아주 곧 활짝 피어날 것만 같았다.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발끝을 세웠고, 아직 오지 않은 그날이 기다려지는 설렘이 가슴 가득 차올라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오래 가시지 않았다.

예지몽 이야기 41

오래된 라디오의 다이얼을 무심코 돌리다 손을 멈췄다. 낡은 스피커에서 지지직거리던 잡음을 뚫고, 처음 듣는 선율이 흘러나왔다. 어디서도 들어 본 적 없는, 아직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노래였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잔잔한 반주가 방 안 구석구석을 천천히 채워 나갔다. 나는 라디오 곁에 앉아 그 멜로디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이상하게도 후렴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입술이 따라 움직였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노래처럼. 언젠가 이 곡을 많은 사람들과 다 함께 목청껏 부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조용히 들었다. 그 선율은 잠에서 깬 뒤에도 귓가에 맴돌며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예지몽 이야기 42

고요한 도서관의 서가 사이를 거닐었다. 종이와 오래된 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감돌았고, 발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나는 무심코 한 권의 책을 뽑아 들었다. 표지에는 아무 제목도 없었다. 페이지를 넘기자 하얀 종이가 이어지다, 맨 마지막 장에 이르렀을 때 나는 숨을 멈췄다. 그곳에 또박또박,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잉크가 아직 마르지 않은 듯 선명했다. 아직 한 줄도 쓰이지 않은 이 책의 마지막에 내 이름이 있다니. 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느낌을, 앞으로 써 내려갈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예감을 또렷이 받았다. 그 확신은 잠에서 깬 뒤에도 조용히 가슴에 남았다.

예지몽 이야기 43

낯선 항구에 도착했다. 짠 내 밴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갈매기 울음과 밧줄 삐걱대는 소리가 뒤섞였다. 무거운 짐을 든 채 두리번거리는데, 부두 저편에서 누군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이는 환하게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하고는, 내 손에서 짐을 자연스레 받아 들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경계심이 조금도 일지 않았다. 오히려 마치 오래전에 나눈 약속을 마침내 지키러 온 사람 같아, 팽팽하던 마음이 스르르 놓였다. 나는 그를 따라 낯선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 만나게 될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 온 어떤 인연이 있으리라는 따뜻한 예감이 잠에서 깬 뒤에도 가슴에 남았다.

예지몽 이야기 44

잔잔한 호숫가를 따라 걸었다. 수면은 거울처럼 매끄러워 하늘과 산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물가 한편에 자그마한 집 한 채가 서 있었다. 나무로 지은 소박한 집이었는데, 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곧게 피어올라 맑은 하늘로 흩어졌다. 나는 그 연기를 한참 바라보았다. 장작 타는 냄새가 어렴풋이 코끝을 스치는 것도 같았다. 창가엔 누군가 켜 둔 듯한 은은한 불빛이 어렸다. 처음 와 본 곳인데도, 언젠가 저 집에서 아침이면 물안개를 바라보며 지내게 될 거라는 확신이 조용히 차올랐다. 서두르지 않아도 결국 그리로 가게 되리라는, 잔잔하고도 분명한 예감이 잠에서 깬 뒤에도 오래 남았다.

예지몽 이야기 45

손바닥 위에 작고 매끈한 알 하나가 놓여 있었다. 따뜻하고 묵직한 그것을 나는 두 손으로 조심스레 감쌌다. 그때 톡, 하는 여린 소리와 함께 껍질에 가느다란 금이 갔다. 금은 실핏줄처럼 번져 나갔고,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려는 듯 꿈틀꿈틀 움직였다. 껍질을 밀어 올리는 작은 힘이 손끝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미세한 떨림을 지켜보았다. 방해하고 싶지 않아 손조차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이 작은 생명이 세상으로 나오려는 순간이, 곧 시작될 어떤 새로운 일의 신호처럼 느껴졌다. 임박한 시작을 앞둔 두근거림이 가슴을 채웠고, 그 설렘은 잠에서 깬 뒤에도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예지몽 이야기 46

낯선 사거리 한복판에 서 있었다. 사방으로 뻗은 넓은 길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 저마다 걸음을 멈춘 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이윽고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고 모두 한 방향으로, 같은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발소리가 하나의 리듬처럼 겹쳐졌다.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함께 걷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이 무리를 따라가면 분명 좋은 곳에 닿을 것만 같았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두렵지 않았다. 이 길이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는 예감이, 잠에서 깬 뒤에도 발끝에 남아 있었다.

예지몽 이야기 47

고요한 밤바다 앞에 서 있었다. 파도는 어둠 속에서 나직이 뒤척였고, 짠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멀리 해안 끝의 등대에서 불빛이 규칙적으로 돌았다. 어둠을 한 바퀴 쓸고 지나갈 때마다, 빛은 매번 바다의 어느 한 지점을 정확히 비추었다. 나는 그 빛의 궤적을 눈으로 좇았다. 우연이 아니라 무언가를 일부러 가리키는 것만 같았다. 빛이 닿는 그 자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곳에 내 앞날이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보이지 않는 나의 길을, 저 등대가 대신 밝혀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오래도록 그 불빛을 지켜보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면 되리라는 조용한 확신이 잠에서 깬 뒤에도 남았다.

예지몽 이야기 48

누군가 내게 잘 마른 장작 한 아름을 안겨 주었다. 결이 곱게 갈라진 장작은 손에 닿는 감촉이 까슬하면서도 단단했고, 은은한 나무 냄새가 코끝에 감돌았다. 그이는 내 팔에 장작을 차곡차곡 얹으며 '곧 불을 지필 때'라고 나직이 일렀다. 나는 그 무게를 품에 안고 가만히 서 있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이 장작이 곧 활활 타올라 방을 데우게 될 광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따뜻한 계절이, 온기가 필요한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 같았다. 미리 준비된 이 넉넉한 장작 덕분에 어떤 추위가 와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든든하게 채워진 품속의 온기가, 잠에서 깬 뒤에도 오래 가시지 않았다.

예지몽 이야기 49

낯선 학교 운동장에 서 있었다. 넓은 흙바닥 위로 오후 햇살이 길게 드리웠고, 조회대 옆으로 하얀 팻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 팻말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놀랍게도 거기엔 또렷하게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처음 와 보는 학교인데, 어째서 내 이름이 저기 있는 걸까. 그런데도 낯설기보다는 어딘가 뭉클했다. 언젠가 이 운동장에, 저 팻말이 세워진 바로 그 자리에 내가 당당히 서게 될 날이 오리라는 예감이 스쳤다. 아직 오지 않은 그날을 떠올리자 가슴이 뜨겁게 차올랐고, 그 벅참은 잠에서 깬 뒤에도 남아 있었다.

예지몽 이야기 50

고요한 아침이었다. 잠에서 깨어 커튼을 젖히고 창을 활짝 열자, 서늘하고 맑은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분명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낮은 지붕들 너머로 완만한 언덕이 이어지고, 골목 어귀엔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정겨웠다. 마치 이 창가에서 수없이 많은 아침을 맞이해 온 것처럼, 모든 것이 손에 익은 듯 편안했다. 새들의 지저귐마저 오래전부터 들어 온 소리 같았다. 나는 창틀에 팔을 괴고 그 낯선 풍경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 낯선 곳이 머지않아 내 매일의 일상이 될 거라는 확신이, 아침 햇살처럼 조용히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예지몽 이야기 51

낯선 기차역 플랫폼에 홀로 서 있었는데, 전광판에는 도착 시간도 행선지도 없이 오직 내 이름 석 자만 붉게 깜빡이고 있었다. 저 멀리서 낡은 완행열차가 덜컹거리며 들어왔고, 창문마다 얼굴을 아는 사람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발을 내디디려 하자 문이 스르륵 닫히더니, 열차는 나를 플랫폼에 남겨 둔 채 조용히 미끄러져 떠나 버렸다. 텅 빈 승강장에 홀로 서서 낡은 시계를 올려다보니, 바늘이 거꾸로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아직 네 차례가 아니다라는 낮고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말이 이상하게도 조금도 무섭지 않고 오히려 깊은 안심이 되었다. 곧 나만의 때가 따로 온다는 예감이 선명했다.

예지몽 이야기 52

끝없이 이어진 어둑한 복도를 걷는데, 양옆으로 똑같이 생긴 문이 수백 개나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손에는 낡은 놋쇠 열쇠가 하나 쥐어져 있었는데, 어느 문에 꽂아 돌려도 도무지 맞지 않았다. 지쳐 걸음이 느려질 무렵, 복도 저 끝에 다른 문들과는 달리 유난히 낡고 작은 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반신반의하며 열쇠를 넣자 딸깍 하고 놀랍도록 부드럽게 돌아갔다. 문 너머에는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익숙한 마당이 펼쳐져 있었지만, 어쩐지 지금의 나보다 훨씬 나이 든 내가 그곳 툇마루에 앉아 나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다 안다는 듯 잔잔히 웃는 순간, 곧 다가올 내 앞날을 미리 엿본 듯 가슴이 서늘하게 울리며 눈이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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