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꿈은 굳이 해몽할 필요 없는, 자고 일어나면 피식 웃게 되는 엉뚱하고 기묘한 꿈입니다. 가볍게 읽으며 즐기기 좋은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개꿈 이야기 52편
여기 실린 꿈 이야기와 해몽 풀이는 재미와 위안을 위한 오락 콘텐츠입니다. 실제 길흉화복을 예언하거나 보장하지 않으며, 중요한 결정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내려 주세요.
개꿈 이야기 1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안에서 난데없이 통통한 펭귄 한 마리가 뒤뚱뒤뚱 튀어나왔다. 펭귄은 당연하다는 듯 식탁 의자에 척 앉더니 배가 고프다며 라면을 끓여 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어서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냐 물었더니, 자기는 원래 우리 집 냉동실에 세 들어 사는 세입자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안 끓여 주면 절대 안 나가겠다고 냉동실 문을 열고 얼음 사이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태연한지 화도 안 나고 웃음만 났다. 결국 냄비를 꺼내 물을 올리자 펭귄은 신이 나서 지느러미로 박수를 치며 계란도 두 개 넣어 달라고 주문까지 얹었다. 보글보글 끓는 라면 냄새가 부엌에 퍼질 무렵 어디선가 알람이 울렸고, 펭귄도 라면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개꿈 이야기 2
여느 때처럼 출근을 했는데, 회사 건물이 통째로 거대한 두부로 지어져 있었다. 흰 벽은 매끈하고 물렁했고, 손으로 누르면 살짝 들어갔다가 도로 부풀었다.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 바닥이 물컹 내려앉으며 순두부처럼 출렁였다.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 벽을 짚었는데 손이 그대로 푹 박혔다. 겨우 사무실 층에 도착하니, 부장님이 커다란 간장 종지를 두 손에 받쳐 든 채 근엄한 표정으로 서 계셨다. 부장님은 나를 보더니 아침부터 어디에 찍어 먹을지 고민이라며 진지하게 물으셨다. 나는 회사가 불어 터지기 전에 오늘 업무를 끝내야 한다는 이상한 사명감에 사로잡혀, 물컹거리는 책상 앞에 앉았다.
개꿈 이야기 3
집에서 뒹굴고 있는데 옆집 고양이가 성큼 들어오더니, 갑자기 또박또박 사람 말로 세금 신고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앞발로 능숙하게 노트북을 펼쳐 자판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발바닥 젤리로 어떻게 저리 빠르게 치는지 감탄하는 사이, 고양이는 각종 공제 항목을 척척 넣더니 환급까지 받아 주었다. 내가 고맙다고 하자 고양이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수임료로 참치캔 세 개를 요구했다. 프리미엄 등급으로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진지하게 어느 브랜드가 좋겠냐고 물었고, 고양이는 눈을 가늘게 뜨며 흰살 참치라야 계약을 이어가겠다고 통보했다. 나는 순순히 창고로 참치캔을 찾으러 갔다.
개꿈 이야기 4
하늘에서 붕어빵이 눈송이처럼 펑펑 쏟아졌다. 사람들은 우산을 거꾸로 뒤집어 들고 떨어지는 붕어빵을 한가득 받았다. 나도 질세라 우산을 펼쳐 수북이 받아 냈는데, 아뿔싸, 받고 보니 전부 슈크림 붕어빵이었다. 나는 팥만 먹는 사람이라 눈앞이 캄캄했다. 마침 저쪽에서 팥 붕어빵만 잔뜩 받고 울상 짓는 아저씨가 보였다. 우리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서로의 처지를 단번에 알아챘다. 나는 슈크림을, 아저씨는 팥을 내밀어 정성껏 물물교환을 했다. 하나씩 교환할 때마다 서로 진지하게 개수를 셌고, 마침내 각자 원하는 붕어빵을 품에 안고서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붕어빵이 쏟아지고 있었다.
개꿈 이야기 5
버스를 탔더니 운전석에 커다란 문어가 앉아 있었다. 문어 기사님은 여덟 개의 다리를 능숙하게 놀려, 한쪽으로는 핸들을 돌리고 다른 쪽으로는 요금을 정산하고, 또 다른 다리로는 승객에게 따뜻한 커피까지 내려 건넸다. 동작이 어찌나 매끄러운지 흐트러짐이 하나도 없었다. 놀라운 건 승객들의 반응이었다. 누구 하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문어가 다리로 내미는 커피를 당연한 듯 받아 홀짝였다. 나만 두리번거리는 게 오히려 무안할 지경이었다. 문어 기사님은 정류장마다 다리 하나를 뻗어 정확히 벨을 눌러 주었고, 내릴 때는 남은 다리로 살갑게 손 인사까지 건넸다. 나는 얼떨결에 마주 손을 흔들며 버스에서 내렸다.
개꿈 이야기 6
거울을 보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내 이가 하나둘 노란 바나나로 변해 있었다. 신기하게도 웃을 때마다 입에서 향긋하고 달콤한 바나나 냄새가 폴폴 풍겼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어디선가 원숭이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내 냄새를 맡고는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녀석은 내가 웃기만을 노리며 눈을 반짝였다. 나는 웃음이 터질까 봐 입을 꾹 다물고 도망 다녔지만, 참으려 할수록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때마다 원숭이는 냄새를 맡고 껑충껑충 달려들었다.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골목을 내달렸고, 원숭이는 바나나 향을 따라 끈질기게 뒤를 쫓았다. 웃음을 참는 일이 이렇게 필사적인 도망일 줄은 몰랐다.
개꿈 이야기 7
학교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모여 단체 달리기 시합을 했다. 그런데 각자 발로 뛰는 게 아니라, 커다란 거북이 등에 올라타서 결승선까지 가는 경기였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 모두 거북이 등에 찰싹 붙어 손뼉을 치며 응원했다. 문제는 거북이들이 도무지 서두를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몇 걸음 기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하나둘 목을 움츠리고 눈을 감아 버렸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거북이들은 단체로 낮잠에 빠져들었다. 아이들이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었다. 반나절이 지나도록 결승선은 저 멀리 그대로였고, 운동장엔 거북이들의 새근새근 코 고는 소리만 가득했다. 나도 결국 등딱지에 기대어 함께 꾸벅꾸벅 졸았다.
개꿈 이야기 8
아침에 눈을 뜨니 내 그림자가 벽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림자는 기지개를 켜더니, 오늘 중요한 회의는 자기가 나 대신 들어가겠다고 당당히 선언했다. 나는 얼떨결에 그러라고 했고, 그림자는 넥타이 모양을 슥 만들어 목에 두르고는 회사로 출근했다. 나는 오랜만에 이불 속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한참 뒤 돌아온 그림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회의가 아주 잘 풀렸다고 자랑했다. 심지어 승진 소식까지 물어 왔다며 벽에 붙어 덩실덩실 춤을 췄다. 나는 낮잠으로 승진을 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지만, 그림자가 워낙 신나 보여 차마 초를 칠 수 없었다. 우리는 나란히 벽에 기대어 승진 축하 낮잠을 한 번 더 잤다.
개꿈 이야기 9
동네 슈퍼에 갔더니, 계산대에 커다란 갈색 곰 한 마리가 떡하니 앉아 있었다. 곰은 앞발로 물건을 척척 바코드에 찍더니, 계산은 오로지 도토리로만 받는다고 했다. 지폐도 카드도 안 되고 오직 도토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지갑을 뒤졌지만 도토리가 있을 리 없었다. 급한 마음에 카드를 내밀자, 곰은 정색을 하며 앞발을 저었다. 도토리가 없으면 외상은 절대 안 된다고, 원칙은 원칙이라며 단호했다. 다른 손님들은 주머니에서 도토리를 한 줌씩 꺼내 능숙하게 계산을 마치고 나갔다. 나만 빈손으로 멀뚱히 서 있었다. 결국 나는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내일은 뒷산에서 도토리를 주워 오겠노라 곰과 약속하고 돌아섰다.
개꿈 이야기 10
달나라로 소풍을 갔는데, 회색 먼지밭 한가운데서 토끼가 떡 대신 시뻘건 마라탕을 끓이고 있었다. 김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별들이 흐릿하게 번졌고, 매콤한 향이 진공을 뚫고 코를 찔렀다. 토끼는 국자로 훠궈를 휘휘 저으며, 지구가 요즘 너무 매워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도망쳐 왔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더니 나에게도 큼직한 그릇에 한 그릇 크게 말아 주었는데, 두부와 목이버섯이 둥둥 떠 있었다. 후루룩 삼키자 혀가 얼얼했고, 지구가 이렇게 매웠나 새삼 놀라며 국물을 들이켰다. 토끼는 절구 대신 냄비를 안고 흐뭇하게 웃었고, 나는 달의 뒷면까지 벌게진 얼굴로 두 그릇째를 청했다.
개꿈 이야기 11
퇴근길 지하철에서 옆자리 아저씨가 신문 대신 커다란 김밥을 쫙 펼쳐 진지하게 읽고 있었다. 은박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종이 넘기는 소리 같았고, 참기름 냄새가 칸 전체에 은은히 퍼졌다. 아저씨는 헤드라인을 읽듯 눈을 가늘게 뜨고 김밥 한 줄을 훑더니, 다 읽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한 조각씩 뜯어 승객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손잡이를 놓고 손을 내밀었고, 단무지가 노랗게 박힌 칸이 단연 가장 인기라 서로 그것만 집으려 실랑이를 벌였다. 나도 하나 받아 우물거리는 사이 내릴 역을 지나쳤지만, 이상하게 하나도 아쉽지 않고 배만 든든했다.
개꿈 이야기 12
베란다에 놓인 우리 집 화분에서 자란 게 꽃이 아니라 작고 통통한 손이었다. 흙을 뚫고 손목까지 쏙 올라온 그 손은 아침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렸고, 내가 물조리개로 물을 주면 물방울이 튀는 게 좋은지 반갑게 손바닥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나는 이 이상한 화초가 혹시라도 시들까 봐 걱정이 되어, 매일 아침저녁으로 조심스레 하이파이브를 해 주었다. 짝, 하고 손바닥이 마주칠 때마다 손가락이 파릇하게 생기를 되찾는 것 같았다. 며칠 지나자 엄지를 척 세워 보이기도 했는데,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도 괜히 뿌듯해서 물을 한 번 더 주었다.
개꿈 이야기 13
아침에 잠이 덜 깬 채로 샤워를 하는데, 수도꼭지를 트니 물 대신 새콤달콤한 오렌지주스가 콸콸 쏟아졌다. 처음엔 시원한가 싶었지만 알갱이가 몸에 착착 달라붙었다. 아무 생각 없이 비누칠을 하자 거품과 과즙이 뒤엉켜 온몸이 끈적끈적해졌고, 씻어 내려 할수록 더 달라붙어 몸이 사탕이 된 기분이었다. 욕실 타일과 거울까지 뿌옇게 김이 서리며 상큼한 과일 향이 가득 찼고, 배수구로 흘러가는 주황빛 물줄기가 마치 작은 개울 같았다. 나는 끈적한 팔을 든 채 이걸 어떻게 헹궈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혀를 내밀어 손등을 한 번 핥아 보고는 의외로 만족스러워 웃고 말았다.
개꿈 이야기 14
무심코 휴대폰을 열었더니 화면 속 앱들이 전부 조그만 강아지로 변해 액정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메신저 자리엔 갈색 푸들이, 카메라 자리엔 하얀 말티즈가 꼬리를 흔들며 통통 튀어 다녔다. 급하게 문자를 보내려고 아이콘을 눌렀지만 강아지는 낑낑거리며 도망갈 뿐 열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앱을 열려면 먼저 화면 위쪽에서 조그만 간식을 끌어다 강아지 코앞에 놓아 주어야 했다. 뼈다귀 모양 간식을 아작아작 씹어 삼킨 강아지가 그제야 만족스레 앉으면 그 앱이 스르륵 열렸다. 나는 문자 하나 보내려고 강아지 다섯 마리를 차례로 먹이느라 손가락이 다 바빴지만, 이상하게 하나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개꿈 이야기 15
건물 로비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더니, 문이 열릴 때마다 층수와는 상관없이 전혀 다른 계절이 펼쳐졌다. 3층에서 문이 열리자 눈이 펑펑 쏟아지며 차가운 바람이 훅 밀려들었고, 발밑까지 하얗게 쌓여 발자국이 뽀득뽀득 났다. 다시 올라 7층에 서니 이번엔 연분홍 벚꽃이 눈처럼 흩날려 어깨 위로 사뿐사뿐 내려앉았고, 어디선가 따뜻한 봄바람과 흙냄새가 실려 왔다. 5층은 매미가 우는 한여름, 9층은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늦가을이었다. 나는 어느 층에 내려야 할지 도무지 정하지 못한 채,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사계절을 오가며 계속 그 안에 머물러 있었다.
개꿈 이야기 16
야근 중에 보고서를 뽑으려고 회사 프린터에 인쇄 버튼을 눌렀더니, 종이 대신 얇게 부친 노란 계란지단이 스르륵 밀려 나왔다. 출력될 때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고소한 냄새가 사무실 파티션을 넘어 옆 팀까지 번졌다. 처음엔 다들 당황했지만, 지단이 한 장 두 장 쌓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밥이며 시금치며 햄을 어디선가 가져왔다. 결국 회의 테이블 위에 김을 펼치고 다 같이 둘러앉아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부장님까지 소매를 걷고 참기름을 발랐고, 프린터는 신이 난 듯 지단을 척척 뽑아냈다. 보고서는 끝내 완성하지 못했지만, 그날 야근은 이상하게도 따뜻하고 배불렀다.
개꿈 이야기 17
저녁 산책을 하러 길을 걷는데, 가로수들이 하나둘 땅속에서 뿌리를 쑥 뽑아 발처럼 세우더니 나를 따라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했다. 은행나무와 벚나무가 가지를 흔들며 뒤를 졸졸 따라왔고, 잎사귀 스치는 소리가 잔잔한 웃음소리 같았다. 신호등 앞에 서자 나무들도 약속이나 한 듯 얌전히 멈춰 빨간불을 기다렸고, 초록불이 켜지자 뿌리를 사뿐사뿐 옮기며 함께 횡단보도를 건넜다. 산책 나온 강아지들은 걸어 다니는 나무가 신기한지 다가와 킁킁 냄새를 맡으며 꼬리를 흔들었고, 나무들도 가지를 살짝 숙여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나는 어느새 초록빛 행렬의 맨 앞에 선 채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개꿈 이야기 18
한밤중에 잠이 깼더니 내 침대가 어느새 나무배로 변해 있었고, 방 안은 발목이 아니라 방 전체가 찰랑이는 바닷물로 가득 차 있었다. 침대는 파도를 따라 위아래로 둥실둥실 흔들렸고, 짭짤한 바다 냄새가 이불 속까지 스며들었다. 나는 베개를 두 개 집어 양옆에 대고 노처럼 물을 저었는데, 생각보다 배가 제법 앞으로 나아가 벽장 쪽으로 미끄러졌다. 그때 반쯤 열린 문틈으로 갈매기 한 마리가 끼룩 소리를 내며 날아들어 침대 발치에 사뿐 내려앉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며 방향을 안내하듯 부리로 창문 쪽을 가리켰다. 나는 갈매기를 따라 노를 저으며, 이 방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설레는 마음으로 물살을 갈랐다.
개꿈 이야기 19
카페에서 마주 앉아 있던 친구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더니 커다랗고 폭신한 식빵으로 변해 버렸다. 노릇한 테두리에 하얀 속살이 통통한 게 영락없는 우량아 식빵이었는데, 자꾸만 뭉개진 목소리로 나를 토스터에 넣어 달라고 졸라 댔다.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으면서도, 친구가 하도 간절하게 조르기에 어쩔 수 없이 커다란 토스터에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지잉, 하고 열선이 붉게 달아오르자 고소한 냄새가 확 퍼졌고, 이윽고 겉이 바삭하고 노릇하게 구워진 친구가 팅 하고 튀어나왔다. 표면에 알맞게 그을린 격자무늬가 새겨진 친구는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더니, 딸기잼을 발라 달라며 또다시 나를 졸랐다.
개꿈 이야기 20
동네 목욕탕에 갔더니 김이 자욱한 탕 안에서 커다란 하마 세 마리가 눈만 빼꼼 내놓은 채 느긋하게 반신욕을 즐기고 있었다. 물이 넘실넘실 넘쳤고, 하마들은 콧김을 뿜으며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중 제일 큰 하마가 나에게 슬그머니 등을 돌리더니, 이태리타월을 내밀며 등 좀 밀어 달라고 눈을 끔뻑였다. 나는 얼떨결에 그 넓고 미끈한 회색 등을 벅벅 밀어 주었는데, 때가 어찌나 나오던지 팔이 다 뻐근했다. 다 밀고 나자 하마는 무척 시원했는지 흐뭇하게 웃으며, 어디서 꺼냈는지 차가운 요구르트를 하나 건넸다. 나는 온몸에 김을 뒤집어쓴 채 그 요구르트를 쪽쪽 빨아 마셨다.
개꿈 이야기 21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두둥실 떠 있는 새하얀 구름이 꼭 솜사탕처럼 보여서, 나도 모르게 발을 딛고 올라가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입안 가득 정말로 달콤한 맛이 사르르 녹아 퍼졌고, 혀끝에서 폭신하게 부서지는 감촉이 영락없는 솜사탕이었다. 신이 나서 두어 입 더 뜯어 먹는데, 그 구름에 둥지를 튼 참새며 제비들이 몰려와 짹짹 요란하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자기들 집을 왜 먹느냐는 듯 부리로 콕콕 쪼며 날개를 파닥이는 통에, 나는 그제야 미안해졌다. 나는 얼른 베어 문 조각을 손으로 조물조물 뭉쳐 뜯긴 자리에 도로 붙여 놓았고, 새들은 그제야 안심한 듯 다시 포근한 구름 속으로 파고들었다.
개꿈 이야기 22
현관 앞에 놓인 택배 상자를 뜯었더니, 주문한 기억도 없는 조그만 초록색 공룡 한 마리가 상자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꼬리를 말고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데, 눈을 끔뻑일 때마다 어찌나 애처로운지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도 잘못 온 물건이겠거니 싶어 반품하려고 상자를 살폈지만, 이미 '수취 완료' 스티커가 떡하니 붙어 도저히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이름을 지어 주고 베란다 한 켠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 이 녀석이 상추를 어찌나 좋아하던지, 나는 화분에 상추를 심어 부지런히 키워 먹였다. 공룡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고, 나는 이 조그만 식구가 언제까지 베란다에 들어맞을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개꿈 이야기 23
친구들과 간 노래방에서 내 차례가 되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입에서 목소리 대신 온갖 악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후렴의 높은 음을 지르자 마이크에서 쨍한 트럼펫 소리가 힘차게 뻗어 나왔고, 감정을 실어 낮게 읊조리자 이번엔 묵직하고 그윽한 첼로 선율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중간중간 떨리는 음에선 바이올린이 가늘게 흐느꼈고, 박자를 놓칠 때면 뜬금없이 심벌즈가 쨍그랑 울렸다. 반주 화면의 점수는 순식간에 백 점으로 치솟았고, 소파에 앉아 있던 친구들은 입을 떡 벌린 채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나는 얼떨떨하면서도 어깨가 으쓱해져서, 앙코르로 한 곡 더 뽑으며 이번엔 플루트까지 불어 젖혔다.
개꿈 이야기 24
아침에 부스스 눈을 떴더니, 우리 집 강아지가 뒷다리로 꼿꼿이 서서 이족보행으로 거실을 오가며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앞발로 서툴게 넥타이를 매고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다듬는 모습이 어찌나 진지한지 말을 붙이기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녀석은 나를 보더니 꼬리를 살랑 흔들며, 부엌에서 뚝딱뚝딱 도시락을 싸 정갈하게 보자기에 묶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오늘 하루도 힘내라는 듯 앞발로 내 무릎을 툭툭 두드리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벽시계를 힐끗 보곤 늦겠다며 화들짝 놀라, 작은 가방을 둘러메고 현관을 박차고 나가 정류장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나는 창문 너머로 버스에 오르는 강아지를 배웅하며, 도시락을 받아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개꿈 이야기 25
시장 좌판에 쌓인 수박 하나가 유난히 반질거려서 나는 손가락 관절로 통통 두드려 보았다. 그러자 안쪽에서 정확히 세 번, 똑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되돌아왔다. 상인 아주머니도 나도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그 수박을 갈랐는데, 붉은 속살 대신 작고 아늑한 방이 나타났다. 벽에는 나뭇잎 벽지가 발려 있었고, 개구리 가족 셋이 방석에 앉아 저녁을 먹다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빠 개구리가 정중히 인사하며 세 들어 산 지 오래됐으니 함부로 팔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박을 도로 붙여 조심스레 제자리에 놓아두었다.
개꿈 이야기 26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골목에서 나는 접혀 있던 우산을 촥 하고 펼쳤다. 그런데 우산 천 안쪽 그늘진 자리에 손톱만 한 무지개가 곱게 걸려 있었고, 그 아래 가지에는 참새보다 작은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새는 내가 비를 피하는 내내 부리를 부지런히 놀리며 조잘조잘 날씨 예보를 읊어 주었다. 십 분 뒤엔 비가 그치고, 오후엔 서풍이 불며, 저녁엔 노을이 진하겠다고 했다. 나는 우산을 조금이라도 기울일까 봐 팔이 저리도록 꼿꼿이 든 채, 이 작은 방송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골목에 오래 서 있었다.
개꿈 이야기 27
학원 수업이 한창인데 칠판에 적힌 글씨들이 갑자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획들이 다리를 뻗고 몸을 세우더니, 검은 개미 떼처럼 줄지어 분필 가루 사이를 기어 다녔다. 공식은 뒤엉키고 숫자들은 벽을 타고 내려와 교탁 위를 헤맸다. 아이들이 웅성거리자 선생님은 당황하지 않고 분필을 집어 칠판 한쪽에 길고 굵은 길을 하나 그어 주었다. 그러자 방황하던 글씨들이 얌전히 그 길로 모여들어, 마치 순번을 기다리듯 문제 순서대로 또박또박 정렬했다. 나는 필기를 멈추고 그 신기한 행렬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개꿈 이야기 28
한밤중 물을 마시러 부엌에 갔다가, 나는 냉장고 속 채소들이 밤마다 몰래 파티를 연다는 비밀을 목격하고 말았다. 문틈으로 흘러나온 불빛 아래, 당근이 작은 무대에 서서 디제이를 맡아 리듬을 깔았고, 브로콜리는 초록 몸을 흔들며 신나게 춤을 췄다. 방울토마토들은 데굴데굴 구르며 박수를 쳤고, 상추는 넓은 잎을 펼쳐 조명을 대신했다.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순간, 내가 냉장고 문을 활짝 열자 음악도 춤도 뚝 멈추고 모두 시치미를 뗀 채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나는 못 본 척 물만 챙겨 들고 조용히 문을 닫아 주었다.
개꿈 이야기 29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새 발이 자꾸만 커져서, 이제는 어떤 신발도 맞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신발장 대신 강가에 매어 둔 나룻배 두 척을 양발에 신고 다녔다. 나무배를 신은 발로 복도를 저벅저벅 지날 때마다 발밑에서 찰랑찰랑 물결이 일어 바닥을 적셨다. 계단이라도 오르려면 손에 쥔 노를 힘껏 저어 배를 한 칸씩 밀어 올려야 했는데, 그때마다 사방으로 물보라가 튀었다. 사람들은 젖은 바짓단을 걷어 올리며 나를 피했지만, 나는 어쩐지 이 출렁이는 걸음이 싫지만은 않아 노를 신나게 저었다.
개꿈 이야기 30
책상 위 달력을 무심코 한 장 넘겼더니, 원래 없던 요일 하나가 떡하니 끼어 있었다. 이름하여 '개요일'. 그날이 되자 세상 모든 강아지가 목줄과 산책과 집 지키는 의무에서 벗어나 다 같이 쉬었다. 사람들도 반려견이 쉬는 김에 덩달아 일을 놓고 공원으로 몰려나왔다. 잔디밭에는 크고 작은 강아지들이 배를 드러내고 뒹굴었고, 주인들도 체면 따위 잊은 채 그 옆에 벌러덩 누워 함께 굴렀다. 나도 낯선 진돗개 한 마리와 나란히 하늘을 보며 뒹굴다가, 이런 요일이 매주 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개꿈 이야기 31
출출한 밤, 나는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의 포장을 익숙하게 죽 잡아당겨 벗겼다. 그런데 김이 스르륵 열리는 순간, 밥 위에서 엄지손가락만 한 농부가 밀짚모자를 눌러쓴 채 쑥 걸어 나왔다. 그는 허리를 펴며 올해 벼농사가 얼마나 고됐는지, 볕이 얼마나 좋았는지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밥알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이건 자기가 새벽부터 물을 대 키운 작품이라고, 어느 것 하나 대충 여문 게 없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차마 그 김밥을 베어 물지 못하고, 농부의 무용담이 끝날 때까지 손에 든 채로 가만히 들어 주었다.
개꿈 이야기 32
아침에 눈을 뜨자 온 방 안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영문을 몰라 머리를 만졌더니, 밤사이 내 머리카락이 몽땅 뽀얀 국수 가락으로 변해 있었다. 베개 위로 흐트러진 면발이 촉촉하게 반질거렸고,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니 촤르르 소리를 내며 매끄럽게 풀렸다. 문제는 냄새를 맡고 달려온 옆집 고양이였다. 녀석은 창틀에 앉아 앞발을 살금살금 뻗으며 자꾸만 내 머리를 넘봤고, 나는 국수가 뜯길까 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방을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세수를 할 때마다 면발이 얼굴에 척척 달라붙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개꿈 이야기 33
지루한 회의가 길어지던 오후, 벽에 걸린 둥근 시계가 갑자기 크게 하품을 했다. 유리 너머에서 하아 하는 숨소리가 새어 나오더니, 시침과 분침이 스르르 접히며 서로를 이불처럼 덮고는 낮잠을 청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방 안의 시간이 통째로 멈춰 버렸다. 아무도 다음 안건을 재촉하지 않았고, 부장님의 말도 허공에 붕 뜬 채 정지했다. 다들 눈치를 살피다가 하나둘 슬그머니 책상에 엎드렸고, 나도 팔을 베고 눈을 감았다. 시계가 다시 깨어나 째깍거리기 전까지, 회의실은 오랜만에 아주 평화롭고 나른한 침묵에 잠겼다.
개꿈 이야기 34
우주 여행을 떠나겠다며 나는 은빛 우주선에 올라탔는데, 조종석에 떡하니 앉아 있는 건 다름 아닌 커다란 붕어빵이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 선장은, 지느러미로 계기판을 툭툭 두드리며 항로를 계산했다. 놀랍게도 연료 대신 뱃속의 팥 앙금 농도를 재어 방향을 정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목성의 고리를 구경하리라 잔뜩 기대했지만, 선장은 자꾸만 남쪽으로 기수를 틀었다. 결국 우주선이 착륙한 곳은 목성이 아니라, 김이 서린 골목 어귀의 붕어빵 노점 바로 앞이었다. 선장은 고향에 왔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개꿈 이야기 35
학교 갈 준비를 하며 나는 여느 때처럼 칫솔에 치약을 짜 이를 닦았다. 그런데 입안 가득 일어난 하얀 거품 속에서, 손톱보다 작은 돌고래들이 폴짝폴짝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세면대에 고인 물웅덩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더니, 꼬리를 치며 신나게 헤엄치고 물을 뿜었다. 그대로 뱉어 하수구로 흘려보내기가 너무 아까워서, 나는 컵에 물을 받아 조심조심 돌고래들을 옮겨 담았다. 그러고는 볕이 잘 드는 창가에 컵을 올려 두고, 다녀올 때까지 잘 놀고 있으라 당부한 뒤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개꿈 이야기 36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열자, 지폐가 있어야 할 자리에 바싹 마른 낙엽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당황한 나와 달리 가게 주인은 익숙하다는 듯 낙엽을 받아 값을 치러 주었다. 알고 보니 그 세상에서는 낙엽이 곧 돈이었고, 밟았을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클수록 더 높은 값으로 쳐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공원과 가로수 아래로 몰려가 가장 잘 마른 낙엽을 주우러 다녔다. 나도 가장 큰 소리를 내는 단풍잎을 찾아 발밑을 살피며 걸었고, 유난히 크게 바스락거리는 한 장을 주웠을 땐 마치 지폐라도 주운 듯 가슴이 뛰었다.
개꿈 이야기 37
밤이 깊어지자 내 방 천장이 스르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진짜 밤하늘이 펼쳐졌다. 검푸른 하늘 가득 별이 촘촘히 박혀 반짝였고, 이따금 별똥별이 긴 꼬리를 그으며 미끄러져 내렸다. 소원을 빌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이불 밖으로 손을 쭉 뻗었는데, 놀랍게도 별 하나가 손짓에 이끌려 스르르 이불 위로 내려앉았다. 그 별은 뜨겁지도 눈부시지도 않게, 반딧불처럼 은은한 빛을 내며 시트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나는 그 작은 빛을 두 손으로 살며시 감싸 쥐고, 빌고 싶었던 소원을 하나하나 천천히 속삭여 주었다.
개꿈 이야기 38
여느 아침처럼 지하철에 몸을 실었는데, 문이 닫히자마자 열차가 요란한 기계음을 내며 놀이공원의 청룡열차로 변해 버렸다. 선로가 갑자기 하늘로 솟구쳤다가 곤두박질쳤고, 손잡이를 잡은 승객들은 서류 가방을 꼭 끌어안은 채 다 같이 비명을 질렀다. 커피가 천장까지 튀고 넥타이가 얼굴을 덮었지만, 열차는 아랑곳없이 회전 구간을 몇 바퀴나 돌았다. 겨우 회사 앞 역에 도착해 비틀거리며 내리고 보니, 모두 머리가 산발이 되고 옷매무새가 엉망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몰골을 보며 헛웃음을 짓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무실로 향했다.
개꿈 이야기 39
잠을 깨려고 나는 커피 머신에 원두를 넣고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노즐에서 흘러나온 건 진한 커피가 아니라, 손바닥만 한 작은 폭포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하얀 구름이었다. 폭포는 컵 안으로 쏴아 시원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그 위로 솜 같은 구름이 소복이 쌓였다. 조심스레 구름을 한 입 떠먹어 보니, 라떼 거품처럼 폭신하게 입안에서 녹으면서 신기하게도 은은한 단맛이 감돌았다. 나는 카페인 대신 구름 한 조각으로 아침을 시작했고, 몸이 개운해지는 게 아니라 어쩐지 하루 종일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개꿈 이야기 40
낡은 책을 무릎에 올리고 첫 장을 펼치자, 글자들이 잉크에서 몸을 일으켜 무대 배우처럼 종이 위로 튀어나왔다. 활자들은 조명을 받으며 이야기를 통째로 연극으로 보여 주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관객석에 앉아 손에 땀을 쥐었다. 그런데 주인공이 결정적인 장면에서 대사를 까먹고 우물쭈물하자, 관객석 여기저기서 훈수가 쏟아졌다. "거기서 고백을 해야지!" 누군가 소리쳤고, 나도 모르게 대사를 대신 읊었다. 배우가 고맙다는 듯 꾸벅 인사하자 책장 전체가 박수 소리로 부풀어 올랐다. 웃음이 나서 잠에서 깰 때까지 그 엉뚱한 무대는 계속되었다.
개꿈 이야기 41
여행을 떠나는 날, 나는 비행기 대신 커다란 종이학을 접었다. 접힌 자국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났고, 다 접고 등에 올라타자 종이학이 목을 길게 뽑으며 하늘로 솟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뾰족한 날개가 파닥거렸고, 아래로는 마을과 강이 손톱만 하게 흘러갔다. 구름을 통과할 땐 종이가 살짝 눅눅해질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학은 능숙하게 젖은 공기를 피해 날았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학은 사뿐히 고도를 낮추더니, 착륙과 동시에 스르륵 몸을 접어 납작한 종이 한 장이 되었다. 나는 그것을 가방에 쏙 넣고, 다음 여행을 위해 소중히 챙겼다.
개꿈 이야기 42
주말에 동물원에 갔더니 세상이 뒤집혀 있었다. 우리 안에는 사람들이 들어가 앉아 있었고, 창살 밖에서는 동물들이 팔짱을 낀 채 구경을 왔다. 나 역시 어느새 우리 안에 서 있었다. 기린이 긴 목을 늘여 나에게 과자 봉지를 던져 줬고, 코끼리는 코를 흔들며 사진을 찍었다. 얼떨결에 과자를 받아 든 나는 관람객들의 기대에 찬 눈빛에 못 이겨 재롱을 부리기 시작했다. 두 손을 모아 앞구르기를 하자 동물들이 발을 구르며 좋아했다. 사자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나는 이상하게 뿌듯해졌고, 다음 재주는 뭘 부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개꿈 이야기 43
손을 씻으려고 세면대의 비누를 잡는 순간, 비누가 미끄덩 하고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비누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데굴데굴 굴러 온 집 안을 도망 다녔다. 나는 미끄러운 거품 발자국을 따라 복도를 지나고 부엌을 지났다. 발자국은 점점 뽀글뽀글 커지더니 욕실 앞에서 뚝 끊겼다. 문틈으로 살짝 들여다보니, 그 작은 비누가 욕조 가득 거품을 잔뜩 만들어 놓고 콧노래를 부르며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비누는 부끄러운 듯 거품 속으로 쏙 숨었다. 나는 차마 방해하지 못하고 조용히 문을 닫아 주었다.
개꿈 이야기 44
급식 시간이 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배식대에 얌전히 쌓여 있던 식판 하나가 다리라도 달린 듯 저벅저벅 걸어 나와 스스로 밥과 국을 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환호하자 식판은 우쭐대며 반찬까지 정갈하게 얹어 줬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더 달라고 하자, 식판은 새침하게 홱 돌아서더니 못 들은 척했다. 나는 당황해서 "미안, 아까 반말한 거 사과할게" 하고 정중히 빌었다. 그러자 식판이 마음이 풀린 듯 슬며시 돌아와 반찬을 수북이 얹어 줬다. 고맙다고 인사하자 식판은 뿌듯한 듯 달그락 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개꿈 이야기 45
한밤중에 목이 말라 화장실로 갔다. 불을 켜자 변기 안에서 작고 노란 오리들이 줄지어 헤엄쳐 나오기 시작했다. 한 마리, 두 마리, 열 마리… 오리들은 타일 바닥 위로 뒤뚱뒤뚱 올라와 나를 빙 둘러쌌다. 내가 무심코 물을 내리려 하자 오리들이 일제히 꽥꽥 소리를 지르며 작은 팻말을 흔들었다. "물 내리기 반대!"라고 적힌 종이였다. 대장으로 보이는 통통한 오리가 앞장서서 시위를 이끌었다. 나는 그 결연한 눈빛에 그만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결국 그날 밤은 물을 내리지 않기로 약속하고, 오리들과 나란히 앉아 협상을 벌였다.
개꿈 이야기 46
동네를 달리던 내 낡은 자전거가 갑자기 옆구리에서 날개를 활짝 펴더니 스르르 하늘로 떠올랐다. 나는 놀라 핸들을 꽉 쥐었지만, 자전거는 익숙하게 구름 사이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페달을 한 번 밟을 때마다 바퀴에서 반짝이는 별가루가 흩뿌려졌고, 그 자리에 은은한 빛의 자국이 남았다. 어디선가 새들이 몰려와 나란히 날며 경주를 신청했다. 나는 웃으며 페달을 힘차게 밟았고, 새들과 함께 노을 진 하늘을 가로질렀다. 바람이 뺨을 스치고 별가루가 눈앞에서 반짝일 때, 이대로 영영 내려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도 같은 마음인지 더 높이 솟구쳤다.
개꿈 이야기 47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를 주문했다. 접시 위에 놓인 케이크는 잠시 후 스스로 부풀어 오르더니, 크림과 스펀지로 지어진 자그마한 성으로 변했다. 딸기 지붕이 반짝였고 초콜릿 벽돌이 견고하게 쌓여 있었다. 신기해서 포크로 성문을 톡톡 두드리자, 안에서 크림으로 빚어진 병사들이 창을 들고 우르르 나왔다. 병사들은 근엄한 목소리로 통행세를 요구했는데, 그 값이 다름 아닌 딸기 하나였다. 나는 접시 위의 딸기를 성문 앞에 놓아 주었다. 병사들이 만족스레 성문을 열자, 안에서 달콤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조심스레 성안으로 포크를 들이밀며 첫 조각을 떠먹었다.
개꿈 이야기 48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교실 안 책상들이 일제히 다리를 접고 스케이트보드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러더니 드르륵 소리를 내며 복도로 미끄러져 나갔다. 나도 얼떨결에 내 책상 위에 올라탔고, 아이들 모두가 각자의 책상을 타고 물결처럼 복도를 질주했다. 우리는 신나게 매점까지 내달려 빵과 우유를 잔뜩 샀다. 책상들은 손님을 실은 배처럼 흔들흔들 균형을 잡아 줬다. 그러다 다음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책상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방향을 틀어 교실로 되돌아갔다. 우리는 제자리에 착 앉았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선생님을 맞이했다.
개꿈 이야기 49
잠자리에 들려고 베개를 베고 누웠더니, 베개가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폭신한 솜뭉치가 몸을 뒤척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커다란 흰 토끼로 변해 있었다. 토끼는 긴 귀를 늘어뜨리고 나를 포근하게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털에 얼굴을 묻자 은은한 라벤더 향이 났다. 토끼는 밤새 나지막이 자장가를 흥얼거렸고, 그 진동이 가슴을 타고 전해져 스르르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구름 위에 누운 것처럼 편안했다. 아침 햇살이 들자 토끼는 마지막으로 코를 찡긋하더니 다시 스르르 납작한 베개로 돌아갔다. 나는 베개를 꼭 안고 한참을 더 누워 있었다.
개꿈 이야기 50
아침에 옷장을 열자, 안에 걸린 옷들이 계절별로 나란히 줄을 서서 오늘 누가 입혀질지 투표를 시작했다. 반팔 티셔츠가 손을 번쩍 들며 "오늘은 화창하니 내 차례!"라고 외쳤고, 두툼한 패딩이 지지 않고 "아침엔 쌀쌀하다"며 팽팽히 맞섰다. 청바지와 반바지도 저마다 표를 던지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표결은 좀처럼 결판이 나지 않았고, 시곗바늘은 자꾸만 돌아갔다. 지각이 다가오자 나는 결단을 내려, 위에는 반팔을 입고 아래는 패딩 바지를 걸치는 기묘한 반반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옷들도 그제야 만족한 듯 옷장 안에서 손뼉을 쳤고, 나는 어색한 옷차림으로 현관을 나섰다.
개꿈 이야기 51
회사에 출근했는데 사무실 책상들이 전부 커다란 젤리로 변해 있었다. 의자에 앉으려다 그대로 말랑한 젤리 속으로 쑥 빠졌고, 동료들은 아무렇지 않게 젤리 속을 헤엄쳐 다니며 회의를 이어 갔다. 부장님은 딸기맛 젤리 위에 점잖게 앉아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는데, 도장을 찍을 때마다 종이에서 파랑새가 튀어나와 천장으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대체 왜 아무도 이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지 따지려 했지만, 입을 열자 말 대신 비눗방울만 뽀글뽀글 흘러나왔다. 손을 휘저을수록 젤리는 더 출렁였고 커피잔마저 둥둥 떠다녔다. 그러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딩동 울리자, 사무실을 채우던 젤리가 순식간에 스르르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개꿈 이야기 52
분명 우리 집 안방인데 문을 열자 눈앞에 새하얀 바닷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냉장고와 텔레비전이 둥둥 떠다녔고, 나는 튜브 대신 커다란 붕어빵을 타고 물 위를 유유히 떠다녔다. 갈매기들이 사람 목소리로 어제 본 드라마 결말이 어땠네 하며 수다를 떨었고, 심심해서 모래를 파 보니 그 속에서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불쑥 나와 빨간 펜으로 시험지를 채점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안경을 치켜올리며 너 지각이야라고 호통을 치는데, 갑자기 교실 종소리가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뒤섞여 울려 퍼졌다. 나는 아랑곳없이 붕어빵이 눅눅해지기 전에 얼른 한 입 크게 베어 물었고, 팥소가 짭짤한 게 바다 맛이 났다.